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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28. 12:39

뉴타운과 흑석시장 화장품 아줌마

뉴타운과 흑석시장 화장품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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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흑석3동 95-1번지 흑석시장.
일곱 살 때부터 살아온 곳을 스물 셋이 되어 떠날 때,
언젠가 꼭 이곳을 사진으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 할머니가 옥수수를 팔고, 그 할아버지가 야채를 파는 곳.
아직도 중학교 후문으로 통하는 저 골목길, 지나는 교복차림의 소녀들이 그 때 우리같아
눈길을 주고 마는 곳.
낮은 천막지붕 아래 작은 노점들이 옹기종기 터를 잡고
아이 손을 잡은 엄마들, 물건 나르는 아저씨들, 단골 아줌마들과 수다일지 장사일지 모를 대화에 빠진 상인들로 하루종일 붐비던 곳.
떡집, 과일집, 야채집, 잡화점, 고깃집, 계란집, 두부집... 벌여진 노점은
매일 봐도 왜 그렇게 재미나던지.
시장 골목길은 끝없는 이야기처럼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거기마다 가득한 삶의 기척에 열네 살 우리는 늘 들떴다.
가끔 골목 안쪽, 친구네 작은 밥집에 가면 그집 어머니가 한 대접 그득히 내놓는 떡볶이가
마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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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카메라를 들고 찾은 흑석시장.
그 많던 노점들 대신 커다랗고 견고한 공사장 가벽이 시장을 몽땅 차지했다.
벽에 밀려 가까스로 한두 명이나 지날 만큼 좁아진 길을,  몸을 움츠린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서울시의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25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 친구네 밥집을 부수고, 저 안에 있던 사람들을 포크레인으로 무너뜨리고.
그러나 한 아주머니의 해사한 얼굴을 만나고는 감히 서글퍼할 수 없었다.
그 얼굴에서, 이곳에서, 다시 삶의 기척을 느꼈다. 더 가깝고 뜨거워 먹먹해지는.

"경찰도 법도 우리 편이 아니더라고요. 나중엔 119도 안와요. 용역한테 맞아서 응급실 갔는데 돈을 못 내서 고소당하기도 했어요. 우리 가난한 사람들, 맨몸밖에 없는 서민들한텐 투쟁밖에 없어요 진짜... 이게 돈이 아니라 명분의 투쟁이구나. 끝까지 가야겠구나 싶었어요"

용역의 폭력에 노점상들이 떠난 후에도 ,
마지막으로 남아 기어코 '사람답게 먹고 살' 권리를 지켜낸 아줌마 다섯,
그 중에서 '두 번째로 젊은' 52살의 화장품가게 아줌마,
함께 움막을 지어 투쟁하던  노점상 새댁이 "집에 전기, 가스가 끊겨서..."라며 데려온
열살 난 아이에게 꼭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다짐하고
용역들에 맞아 눈 아래 뼈가 부숴진 후, 용역이 잡아 던지지 못하게
스스로 몸에 오물을 발라가며 포크레인 앞을 잡아 막았다는 그 아줌마는
25년간 흑석시장에서 살아온 흑석시장 철거민대책위원회의 정삼례 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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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해갖고 개발지구 막 만들잖아요. 그런데 개발이 재벌 위주로만 되잖아요.
원주민은 내 집 갖고도 그걸 헐값에 팔고,
비싼 값에 시공사에 아파트 사서 들어가야 하는 꼴이에요. 그 차액이 너무 커서 다시 못 들어가요. 지금 흑석3동 재개발지구 3,4지구는 사람이 없어요. 거의 3000세대 이상 나갔을걸요. 장사도 다 안되죠.
또 조합원 중에도 피해자 많아요. 돈벌이 없어 전월세로 먹고 사는 노인들 집 같은 것도 다 없애고 아파트 세우고..다 돈 많은 사람들, 자본 편에서만 개발을 해서 그런거 같아요.
우리 흑석동이 본보기가 되어서 다른 곳도 좀 억울하게 이렇게 당하지 말고 서민이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

시공사, 건물주만 배를 불리고, 돈 없는 서민은 조합에 들든 철거민 신세가 되든
등만 터지는 현실, 이 제로섬 속성이야말로 뉴타운의 본질이 아닐까.